공무원 생활/공무원 생활

전산직이 이런 업무까지 한다고?

kirope 2023. 1. 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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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중에
'은현장의 골목식당'이라는 채널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식당들의 요청을 받아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기본 포맷이 동일하다.

그러면서 자영업을 하지 말라는 의도로
자영업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내가 올리는 글들 역시 같은 맥락이 아닌가싶다.

전산직이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부 민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다.

남들은 하기 어렵다는 인사이동을
3년 9개월 안에 4번이나 했고,
그 사이에 별별 일들을 많이 겪었다.

빌런을 하나 피하면 또 다른 빌런이 나타났다.

신입왕따, 주말에 자녀 컴퓨터 설치 같은 개인적 부탁,
인격모독과 갑질 등등
남들은 하나만 겪어도 의원면직할 일들을
다 한번씩 겪었다.

컴퓨터 수리 및 설치는 뭐 너무 당연했다.

비리와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조직에서 버린,
다들 어떻게든 맡지 않으려는 해외 사업도 맡아서
코로나에 출장까지 가서 정상화 시키기도 했다.

업무의 다양성과 범위를 매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시험 준비할 때 분명 어디선가 전산직의 장점으로
루틴한 업무 수행이라는 문구를 봤던 것 같은데,

태생이 비전산이어서 그런건지
루틴한 업무는 거의 못해봤다.
(여기서 말하는 루틴한 업무란 사업 진행을 말한다.)

나는 운영지원과였고, 국제협력담당관이었으며,
비상안전담당관이었고, 정보화담당관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한 2020년에 담당자로써
모든 공무국외출장을 불승인 해 놓고
정작 2021년에 내가 코로나 이후
최초의 공무국외출장을 가게 된다.

상대국 정부 담당자, 여행사 담당자, 호텔 담당자,
우리 부서 과장, 국제협력담당관 직원들,
국내 업체 직원들과 해외 업체 직원들,
한 업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엮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무리한 진행과 비리로
많이 어긋나 있었고 접으려고 시도했던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하게 됐던 이유는...
부서원들이 과장의 억지에 지쳐 다들 배척 중이었고,
옆부서의 P사무관 갑질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상대적으로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담당자만 13번 이상 바뀌었던 사업을 나보고 하라니...
바로 직전에 맡고 있던 사람은 6급이고, 난 8급인데?...
일 잘 한다고 소문난 5급, 6급도
간신히 유지만 하던걸?

뭐 과장 본인이 다 할테니
메일만 보내면 된다고 하면서
얼떨결에 떠맡게 된 업무였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메일만 보내면 되기는 개뿔...
상대국 담당자와 실시간으로
영어로 채팅도 해야 되고,
메일도 보내야 되고, 화상회의도 해야 되고,
서한문도 작성해서 보내야 되고,
관련된 사람들은 너무 많고,
각 담당자 직급이 어느 정도인지 설명도 없고...

정말 맨 땅에 헤딩하듯이
밤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계속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출국하는 날 아침까지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못 나간다는
황당한 여행사 직원도 내가 이끌어야 되고,

말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일반상식에 상당히 어긋난 과장도 달래면서
모든 것이 최초인 업무를 진행했어야 했다.

이 정도 업무를 하고도 7급 승진 심사 때
과장이 나에게 '초고속 승진 아닌가요'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전산직은 초고속 승진을 해야
동기인 행정직과 같은 속도로 승진이 된다.

지방청에만 있던 행정직도 같이 7급으로 승진했지만,
아무래도 전산직만 먼저 올라가면 모양이 이상하니
동기라는 걸로 묶어서 승진시킨 것 같았다.

분명 같이 올라갔음에도
인사과에 있던 동기가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더라.

본인은 몇 개월 다른데서 일하다 왔으니
당연히 다른 동기들보다 먼저 올라가야 하는데
같이 승진해서 그런걸까?

국가직 전산직은 행정직군으로 분류됨에도
행정직보다 뛰어나야 겨우 승진 속도를 맞출 수 있다.

전산직 자체의 문제인건지, 소수직렬이라 그런건지...

솔직히 이제는 복직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육아휴직을 최대 3년 쓰고 나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복직하면 또 어디로 불려가서 소모가 될지...

그렇다고 전산직이 행정직처럼
부처 이동이 쉬운 것도 아니고,
해봤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서 이동뿐인데,
그 밥에 그 나물이라 크게 효용도 없다.

육아휴직자에 대한 지원도
이젠 사기업보다 공무원이 더 안 좋고
연금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데
육아휴직급여에서 30만원씩 떼어가고,
월급에 비해 드는 품은 너무 과도하다.

누칼협, 너 말고 일할 사람 많다 등등
들을 필요 없는 소리들을 걸렀을 때
사기업이 더 좋아보이는 건 사실이다.

육아휴직 동안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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